존경하는 대통령님과 정부 관계자 여러분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에서 17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체장애인 초등교사 박병찬입니다.
대통령님, 학교 현장은 아직 장애인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17년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저조차도 매일같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몇 년 전 출근길에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때 병원은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진단서를 발급했고, 저는 휠체어에 앉아 출근하며 봉합한 상처가 터지는 고통 속에서도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병휴직을 문의했을 때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장애를 사유로 병휴직을 신청하고 완치되지 않으면 의원면직 된다.” 교단에서 수년간 헌신해 온 장애인교사에게 돌아온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응급실을 드나들며 교단에 서야 했습니다.
재난 발생 시에 장애인교원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 매뉴얼조차 수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재난 안전 교육 때 소방관님께 여쭤보니 알아서 생존하라고 하시더군요.
관리자들의 선입견으로 인한 차별은 장애인교사들에게 일상입니다. 저도 10여 년을 담임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 문제와 학부모 민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관리자들의 이런 편견으로 인해 긴 세월 저의 능력을 사전에 제한당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장애인교사들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어렵게 5학년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교사는 교육 현장에서 비장애인 교사가 할 수 없는 고유하고 귀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교사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력한 다양성 교육이자 살아있는 통합교육의 모델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장애인교사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장애인교사가 보여주는 서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전하는 역할 모델이자 동기 부여입니다. 이는 그 어떤 언어적 설득보다 강력한 교육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장애인교사는 자신의 장애로 인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교수법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힘든 상황의 학생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인성 발달에 대체불가한 기여를 해낼 수 있습니다.
정부와 교육 당국에서는 아래 7가지 지원 체계를 마련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1. 장애인교사를 위한 국가 차원의 법률을 제정해 주십시오.
공립학교에 장애인이 임용된 지 20년이 다 돼 감에도 장애인교사를 지원하는 법 하나 없습니다. 장애인교원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법률을 만들어 주십시오.
2. 인력 지원 제도를 개선해 주십시오.
지원인력이 연가나 병가를 쓸 때, 장애인교사는 대체인력이 없어 학교 현장에서 완전히 고립됩니다. 출장 시 근로지원인 출장비가 지원되지 않아, 혼자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됩니다. 성적 처리 기간, 학부모 상담 주간처럼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도 지원인력 예산 부족으로 초과근무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육청이 장애인교사에 대한 지원인력을 제공하지 않아 근로지원인이라는 학교 현장에 맞지 않는 불안정한 제도를 빌려써야만 하는 실정입니다.
3. 관리자 교육을 강화해 주십시오.
수많은 교장, 교감님들은 여태까지도 장애인교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릅니다. 장애를 가진 구성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관리자들은 자연스럽게 장애인교사를 업무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제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가진 장애 유형에 따라 하기 어려운 업무도 있지만, 수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업무도 많습니다. 관리자라면 응당 구성원의 특성을 고려해 적합한 업무를 분장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관리자들의 연수 시 장애인교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교육을 필수로 포함해야 합니다.
4. 인사제도를 개선해 주십시오.
서울 수서에 사는 장애인교사가 파주까지 출퇴근했던 일이 있습니다. 지방의 도단위 지역에는 더 심각한 사례도 다수 존재합니다. 운전도 어렵고, 대중교통 이용도 어려운 장애인교사가 머나먼 출퇴근길을 다니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위협입니다. 중증 장애인교사의 근무 희망지 우선 배치 규정을 마련하고, 장애 특성과 물리적 접근성을 고려한 전보 기준을 수립해 주십시오. 이는 특혜가 아니라 생존권입니다.
5. 물리적 접근성을 갖춘 근무 환경을 조성해 주십시오.
장애인교사는 새 학교 발령 때마다 편의시설이 없어 몇 달을 고생합니다. 우리도 3월 개학 첫 날부터 당당하게 업무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장애인교사 발령 전 편의시설 설치와, 긴급할 시 신속 지원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해 주십시오.
6. 정보 접근권을 보장해 주십시오.
학교 내 업무용 메신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개발 및 선정에 장애인은 오랜 기간 배제되어 왔습니다. 접근성을 보장한 플랫폼 및 소프트웨어만이 학교 현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해 주십시오.
7. 장애인교사에 대한 매뉴얼을 안내해 주십시오.
교육부에서 ‘장애인교원 인사관리 안내서’를 발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 매뉴얼을 본 적도 없고, 교육 당국은 안내조차 하지 않습니다. 관리자들과 동료 교사들이 해당 매뉴얼을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우리 장애인교사들은 정당한 편의지원을 받으며 한 사람의 교육자가 되고자 합니다. 저 역시 국가의 교육을 받고 자라, 임용고시를 통과한 한 사람의 교사입니다. 우리는 다양성과 통합의 증인이며, 미래 사회의 희망입니다.
저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장애인교사를 품을 수 있는 학교 현장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평등교육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체장애인 초등교사 박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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